개시 공고
Notice of Commencement, 2018-2020
> Photography, Fiction, Installation
- 녹음 시작하겠습니다. -네
-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? - 조, 명, 자에요.
- 남편분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하신 이유가 뭔가요?
- 되게 오래 전 일이긴 한데...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거든요? 근데 이게 해결이 안되더라구요. 그래서 알 아보니까 이런게 있다고 해서, 이거라도 하면 좀 괜찮아질까 해서요.
- 남편분이 선생님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퍼뜨린건가요?
- 아뇨 아뇨 그건 아니에요. 음...
-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?
- 네, 네. 말씀드려야죠.
- 음... 제가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하나 ᄒᄒᄒ. 제가, 삼시세끼 싸다구를 먹었어요, 삼시서 끼. 아침먹고 싸다구, 점심먹고 싸다구, 저녁먹고 싸다구. 어쩔 땐 야식으로도 먹었죠.ᄒᄒ 그이는 밥 먹듯 저를 팼구 저는 밥 먹듯 맞았죠. 제가 뭐만 했다하면 소리를 빽 지르면서 뺨을 때리는데, 선생님도 맞아보셨으면 아시잖아요. 뺨이 고추같이 얼럴해지는거. 이게 처음에는 뺨만 뜨거운 것 같다가도 나중에 맞다보면 뇌까지 얼얼해지는 기분이 에요. 정신이 얼얼~해. ᄒᄒᄒ
- 힘드셨겠어요.
- 에이에이, 예전에는 뭐 별 수 있나요? ᄒᄒᄒ 다들 맞고 다녔죠 그 때는. 지금이야 데이트폭력 어쩌구 하면 몇 놈 관심이나 가져주지요. 그때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편네가 힘들게 바깥일 하고 오는거 생각 안 하고 지아비 욕 한 다면서 ᄒᄒᄒ 서로 맞고 사는 여편네들끼리도 욕을 해요. ᄒᄒᄒᄒᄒᄒ 그때는 아무 이유도 없이 썩을 년, 못된 년 해서 집에서 얻어 맞고, 나가서는 은혜도 모르는 년이라면서 주댕이로 얻어 맞고 하릴없이 맞고만 다니는 세월이었 어요. ᄒᄒᄒᄒ
- 혹시 남편분이 밖에서도 때리던가요?
- 아뇨 아뇨.ᄒᄒᄒᄒ 집에서만요. 근데 집에 애기들이 있잖아요, 애기들이. 애기들이 뭘 알아요? 갑자기 손찌검하 면 그 소리에 애들도 놀라요. 깜짝 놀라. 그리고 얼마나 우는데. 애들은 옆에서 울어 제끼고, 남편은 소리 지르고, 티비는 시끄럽고, 그러면 뺨은 뜨거운 채로 머릿속에 매미가 한 마리 왕왕 거리는거에요 그 때부터는. 매미가 아무 리 왕왕 울어도 저는 밥 차리고, 계란 부치고, 소주 내오고, 빈 병 내가고, 빈 접시 치우고, 상 닦고, 이부자리 피는걸 다 해야했어요. 그때는 그게 당연했거든요.
- 왜 당연했다고 생각하셨어요?
- 음, 그때는 뭐.ᄒᄒᄒ 혼수라고는 소쿠리 하나 딸랑 들고 온 마당에 시어머니서부터 이래라 하면 이러고, 저래라 하면 저러는게 능사였으니까요.
- 손찌검하지 말라는 의사표현은 해보셨어요?
- 아뇨.ᄒᄒᄒ그때는 너무 어렸어요. 그래서 그냥 제가 시집을 잘못 갔나보다 생각하고 끝이었어요. 그때는 뭐, 결혼 이 제일 중요하던 시기였잖아요. ᄒᄒᄒᄒ 누구한테 시집가냐, 시집가서 어떻게 사냐, 자식은 뭐하냐... 제 인생이 그 냥결혼위해만들어진,뭐그런건줄알았어요.ᄒᄒ 어쨌든우리친정에서도,우리큰오빠가밥숟갈하나덜자 고 저를 여기에다 갖다 놓은거니까 ....... 그러니 제가 무슨 말이든 하고 살 수가 있었겠어요? 여기 아니면 발 붙이고 살데도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납작 엎드릴 수밖에요.
그러니까 저한테는 그 싸다구가 당연했던거에요.
그리고 어디 저만 맞았게요. 나가보면 웃집 동선이네 엄마도 허구헌날 맞고 저 아래 막냇집 동춘네도 맨날 매 맞았 지. 만국공통이었어요~.ᄒᄒᄒ 어쩌다 참다참다 못 참아서 한 명 울면, 한 명이 또 달래주구 막 괜찮다고.ᄒᄒᄒ 그 래서 같이 요 앞 낙산공원에 가요 한 번씩. 춤추면서 한 판 풀고 오면 좀 괜찮아진다고, 저도 언니가 데려가서 처음 알았어. 근데 그게 스트레스 풀리고 좋대요. 거기 나가면 많아요, 그런 여편네들이. 막 모여가지고 그냥 좋다고, 볼 은 벌-겋게 해가지고 깔깔거리면서 흔들어대는 거에요. 맞은건 맞은거고. 이건 또 이거고. 그래야 우리도 살지.
그래도 나는 어디 가서 바깥 양반 욕은 안 했었어요. 내 속이 썩어 문드러져도 내 자식들 애비다 생각하면 입이 딱 다물리더라고. 그래서 나는 그냥 그 양반 돌아오면 한 상 딱 차려주고, 아 그 양반이 부대서 짐 날라주는 일 같은걸 하니까 일이 고되요. 그러니까 들어오면 꼭 한 잔씩 한다고. 그러니까 나는 한 상 딱 차려주고 방구석에 가만 들어 앉아 티브이나 보고 있는거에요. ᄒᄒᄒ 뭐 또 잘해준답시고 돌아댕기다 눈에 띄면 맞거든. ᄒᄒ 근데 하루는 때리 고 난 다음날 손에 만원을 꼭 쥐어주는 거에요. 맛난거 좀 사먹고, 입술 좀 바르고 그러라고. 그래서 내가 이 양반이 어디가 아픈가, 왜 그러나 싶으면서도 우리 막내 꽈배기 사줄라고 냉큼 받았죠 그때.
아니 근데 그 후로 이 양반이 때린 날 다음이면 꼭 만원씩 주고 가는 거에요. 맛난것도 사먹고 애들 학용품 같은 것 도 잘 챙겨주라고. 처음에 나는 진짜 이 사람이 어디가 아픈가보다 하고 겁이 덜컥 났어. 아무리 싫어도 옆에 있어 야지 없으면 무섭잖아... 그래서 아침에 조용히 물어보니까 없대, 자기는 깨-끗하다고 너나 잘하라면서 나가는거에 요. 그러다그냥그날로고꾸라졌어요.그부대안에아저씨가그러길그냥억!하더니 쓰러졌대요.이제그후로 계속 누워있는거에요, 계속. 근데 그러고 저 혼자 가만 앉아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히더라구요. 눈물이 막막 나는데 자식한테 보일 수도 없어서 그냥 혼자 끅끅하면서 한참을 울었어요. 어제 맞은 덴 아직 매미가 붙어 있는것마냥 얼얼한데 거따 대고 돈을 주니까... 정신이 얼떨떨해지는거에요. 내가 뭐 잘못했나? 예전에는 그냥 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그냥 때리더니 이제와서 돈을 준다고? 저는 여기 시집온게 내가 죈가 보다, 내가 전생에 큰 잘못을 했나보다 생각하면서 맞아도 안 맞은 척, 아파도 안 아픈 척, 없는 사람맨치 우두 커니 집이나 보고 애들이나 봤는데 이제와서 돈을 왜 줘요... 아니, 지가 뭐라고 나한테 돈을 주냐고요. 생각해보니 너무너무 서럽고, 아주 괘씸하더라니까요 그 놈.
「명자씨를 구, 하, 라.」






